인물탐방이나 인터뷰를 할 때는 취재의 대상이 한 분야에 대해 오랫동안 종사하였거나, 업적을 이룬 사람들, 또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취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취재 시 질문 할 내용들은 사전 학습을 통해 정리를 한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오늘 주인공들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170여편에 달하는 컬럼, 저서, 논문, 강연 등과 같이 참고할 만한 자료가 많아 인터뷰 준비가 비교적 수월했다. 이들은 인구문제와 커뮤니케이션, 지역사회개발, 농촌교육, 평생교육학 등의 분야에서 저명한 인물이다. 금주 타임즈에서는 평생교육의 원로학자인 정지웅(77), 김지자(76)부부를 만났다. 
▲ 정지웅(좌), 김지자(우) 부부 Q. 요즘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신가요? 정지웅: 저는 현재 사단법인 한국문해교육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김지자선생은 협회에서 국제이사직을 맡고 있고, 기독교에서 올해 3월 2일에 정식으로 운영하는 쉐마초등학교 교장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쉐마교육이라는 것을 쉽게 말하자면, 인성교육이라고 할 수 있죠.
김지자: 어떤 종교적인 개념을 떠나서 평생교육 관점에서 도움이 된다면, 한 번쯤은 다뤄도 될 만한 주제라 생각됩니다. 쉐마교육(Shema Education)은 성경의 신명기 6:4~9을 기초로 해서 교육을 하는 방법을 말해요. 그 뜻은 히브리어로 ‘hear, listen’ 즉, 들으라는 의미인데,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일상생활에서 어머니로부터 계속적인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죠. 말씀교육, 가족과 연계된 교육, 생활교육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현재의 인성교육과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도 가정교육이 무척 중요한 것처럼 평생교육의 가장 기본이라고 한다면, 가정교육 안에서 실시되어야 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이 교육을 통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정지웅(서울대학교 명예교수)과 김지자(서울교육대학교 명예교수) 부부는 사회교육학자이며, 평생교육 1세대이다. 사회교육의 이론을 확립했던 그들은 최근, 평생교육의 가장 기본으로 가정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평생교육의 차원에서 볼 때, 일반적으로 계획적이며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학교교육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의 형성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가정교육에 대한 중요성은 쇠퇴 되어지고 있다. 평생교육이 행하여지는 생활현실에서 인간으로서의 자기형성과 삶의 의미의 발견은 일차적으로 가정교육 안에서 기본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지닌다. Q. ‘평생교육’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정지웅: 평생교육(Lifelong Education)이라는 용어 이전에 사회교육(social Education)이라고 불리었죠. 사회교육이란 간단히 말하면 학교교육의 혜택을 덜 받은 청소년과 성인대상의 의도적, 조직적으로 실시하는 비정규의 학습지도 활동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제가 나이가 들고 보니, 평생교육이란,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이 이야기 하는 장면, 그 자체를 평생교육이라 생각해요. 그 이야기 속에는 ‘배움’이 존재해요. 그 속에는 예절이 있고, 인성이 있고, 성품이 있고, 서로 공존하면서 배움을 이룬다는 것이죠. 가정에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한다는 것, 조부모와 손자들이 함께 한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이 가정교육 안에서 ‘효(孝)’를 실천하는 평생교육이죠. 김지자: ‘평생교육’이라고 할 때는 교육하면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평생교육이라는 것을 어떻게 하면 잘할까라는 것은 우리가 좀 더 생각해봐야할 것 같아요. 그런데 결국 평생교육을 잘하려면 결국 ‘평생학습이야, 어떻게 잘 배울까’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해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어려서부터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 보면 우리는 평생교육을 누군가에게 ‘배웠다’라기 보다는 우리는 평생학습을 ‘해왔다’라는 겁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님이 별 말씀 안하시더라도 ‘내가 한 행동이 올바른 행동이구나.’라는 것을 스스로 터득한다는 것이죠.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면서 그렇게 나이가 먹어가면서 배우는 거죠. Lifelong Learning이지! 삶 자체가 배움인데 그 배움을 좀 더 어떻게 할까라고 하는 것을 학문적으로도 하고 체계적으로 해나가는 것을 평생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배움을 계속해서 꾸준히 하는게 중요하죠. Q. 선생님께서는 계속적인 배움을 강조하시는데, 두 분만의 특별한 공부 방법이 있으신가요?
정지웅: 공부 할 땐 특히 김지자선생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죠. 우리는 아침마다 영어신문을 보거든요. 같이 읽으면서 서로 의미도 찾고, 토론도 하고, 공부하는 거예요. 오늘 아침에도 ‘fare’라는 단어를 두고 한참을 논쟁을 했지요. 그런 게 다 공부의 습관이 된 거죠. 저는 눈이 안 좋아서 돋보기로 글을 봐요. 책을 보려면 20배 확대해서 보는 기계가 있어요. 근데 돋보기는 창피해서 남 앞에서 안 쓰고, 혼자 있을 때만 휴대용 돋보기를 활용해서 봐요. 대신에 모든 내용들을 머리로 정리하고 기억해서 강의나 세미나, 국제 회의 등에서 페이퍼 없이 발표를 하지요. 페이퍼 보고 읽는 사람은 인기가 없어요, 저같이 페이퍼를 하나도 안보고 말하는 사람이 박수를 더 많이 받고, 강의자로서 손색이 없거든요. 그래서 전 제 직업을 잘 타고난 것 같아요. 그리고 답답할 때는 김지자선생의 도움을 받아요. 김지자선생이 제 부족한 점을 잘 알고 잘 챙겨줘요. 
▲ 아침마다 신문을 읽는 정지웅, 김지자 부부 김지자 : 대체적으로 공부를 하는데 영어로 많이 하게 돼요! 나는 매일 영자신문을 읽고 거기서 나오는 새로운 단어가 있으면 그 주제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눠요. 같은 내용은 반복하고, 새로운 내용은 서로 익히면서 계속적인 학습을 하는 거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성교육, 가정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눕니다. 결국은 ‘인재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문제거든요. 요즘 사람들은 학원이나 학교에만 의존하는데, 그것을 가정 안에서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함께한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부모와 아이가 서로 ‘토론’을 통해서 아이들의 창의력을 높이고, 가정에서는 부모에 대한 공경심이 커진다는 것에서 의미 있다고 볼 수 있죠. 필리핀 유학파인 부부의 아침은 영어 신문 읽기와 토론으로 시작된다. 결혼한지 50년이 된 이들 부부에게는 몸에 베인 습관이다. 배움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르나, 정지웅선생은 약시로 인해 약해진 시력이 학습에 방해요인이 된다. 부부란 서로가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어려운 일일수록 위로와 용기로 이끌어 주는 반려자이다. 그런 그에게 김지자선생은 그의 따뜻한 손이 되어 주고, 삶의 무게를 서로 나누어 지고 걷는 안내자이며, 목마른 학문적 갈증을 배움으로 나누는 단비와 같은 존재이다. 그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늘 함께 동행한다. 평생교육 현장의 실천가들이라면, 그들의 아름다운 동행을 한번쯤은 목격 했을 것이다. Q. 평생교육 1세대인 선생님들께서 평생교육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하셨고, 그 시기에 예측하셨던 평생교육의 방향이 지금 현 시대에 잘 반영되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지자: 저는 평생교육1세대라고해서 평생교육이라는 말을 바로 도입한 것은 아니예요. 그 이전에 사회교육이라고 불렀죠. 그 사회교육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이전에는 학교교육, 그 이전에는 가정교육이라고 봐요. 가정에서만 하던 것을 학교의 중요성이 부각 되면서 학교교육 중심이 되었고, 학교 교육에서 끝날 줄 알았던 교육이 사회에 나가보니, ‘배워야 할 게 더 많다’라는 것을 느끼고, 사회교육이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저는 대학교 다닐 때 논문도 사회교육과 관련된 내용으로 썼어요. 근데 사회교육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매스미디어(mass media)와 관련 되어져서 그 용어조차 평생교육이라는 말로 바뀌었고, 그 의미는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연계성이 있는 것으로 봤죠. 즉, 가정-학교-사회를 lifelong이라는 개념으로 평생을 배워야 한다는 거죠. 
▲ 1981년도에 열린 한국사회교육 심포지움 정지웅: 시대가 변하고, 사회교육법이 평생교육법으로 바뀌고, 상당히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봐요. 그래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사회단체나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학교교육의 기회를 놓쳤던 사람들도 이제 배울 수 있다는 점은 이것은 굉장한 일이라고 봐요. 이러한 변화는 문해교육을 보면 더 절실히 느낄 수 있어요. 정지웅: 저는 사범대학에 있었지만 1학년 때부터 ‘농촌사회연구회’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었어요. 내가 피난살이 시절 농촌이 못사는 모습을 보고 ‘이 농촌을 어떻게 살려야할 것인가’라는 것을 생각했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교육이었습니다. 교육이야말로, 우리 한국의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농촌의 전반적인 어려운 상황을 볼 때, 학교교육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사회교육이라는 용어를 써서 60년대에 석사 논문을 썼죠. 그 당시만 해도 사회교육이 아니면 안 되겠다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처럼 평생교육시대가 되고, 이렇게 확대가 될 줄은 사실 몰랐습니다. 그 시절에는 사회교육, 평생교육 해야 된다는 방향만 굉장히 강조하고 있었죠. 그런데 지금 와서 너무 커져서 어떻게 보면 세계적으로 시범국으로 너무 빨리 된 건 아닌가라는 염려도 됩니다. 우리나라는 뭐든지 너무 빨리되거든요. Q. 지금의 평생교육 문제점은 없을까요? 정지웅: 문제점이라기 보다는 우려 되는 점이 있죠. 너무 빨리 평생학습 사회를 만들었다는 거죠. 우리나라는 무엇이든 빨리 해냅니다. 그게 부작용이 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70년대에 우리 부부가 가족계획에 종사했었어요. 지금 저출산의 문제가 어쩜 우리의 책임인 것 같아요. 그 시절 우리나라가 많은 인구수로 고민하고 있었을 때였죠. 그런데 그것을 가장 빠른 시일 내에 그 문제를 해결 한 거죠. 그래서 세계적인 시범국이 되어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 인구감소 해결방안을 배우러 오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보세요. 지금은 역효과로 저출산 세계 1위 아닙니까? 지식기반사회에 인재가 자원이 되는 이 시대의 역행을 보는 단적인 면이라 할 수 있죠. 김지자: 거기에서 저는 요즘 세대에게 매스컴이 사람들에게 많은 긍정적인 힘을 미치기도 하지만, 매스컴의 문제점도 심각하다고 봐요. 우리 한국에 평생교육에 큰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매스컴과 특히 IT에요. 아이들 IT로 하는 것들을 통제 할 수 없어요. 게임도 그렇고 텔레비전도 그렇고, 제가 제일 신경 쓰이는 부분이죠. 특히, 뉴스 보세요. 대중들은 점점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니면 관심도 없어요. 최근 뉴스의 예를 보면, 목사가 애를 죽였다는 것도 몇 백만분의 한 사례겠지만,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 세상이 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거죠. 이러한 악영향, 역기능이 우리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효율적이고, 점진적인 감성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겁니다. 실제로 평생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어떤 지자체의 네이밍만 좋은 사업들만 운운해 가며, 성공여부를 말하는데 그게 매스컴의 효과라는 거죠. 실제로 현장에 나가보면, 허울만 있을 뿐, 실제로 활용되지 않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 1986년도에 열린 제 1회 한국사회교육협회 세미나에 참석하신 분들의 사진(앞줄 맨 왼쪽이 정지웅선생님) Q. 향후 평생교육에 대한 전망이나 바램은 없으신가요? 정지웅: 그래서 인성 교육이 무척 중요하다는 겁니다. 김지자선생이 교장으로 갈 쉐마학교는 사실 규모가 크지 않아요. 9명의 학생들이 전교생이지만, 그 부모들이 함께 모였을 땐, 그 규모가 커진다는 거죠. 기독교적으로 유대인들의 교육을 강조하는 것에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종교적인 것을 떠나 유대인들은 나라가 없이도 2000년 동안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 것은 교육의 힘이거든요. 그 시대에 무슨 교육이 있었겠어요.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전부잖아요. 그런 모습을 통해 부모교육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엉망이에요. 부모가 자식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폐륜도 많잖아요. 이런 비윤리적인 타락의 문제도 결국 평생교육에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인성교육도 나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원로들은 가정교육, 인성교육에 가치를 두고 있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학문분야의 정통성보다는 사회적 필요성에 보다 큰 가치를 두고 있는 듯하다. 특히, 실천학문 분야의 평생교육은 지금도 계속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시점에서 평생교육 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필요성을 느낀다. 평생교육을 학문적으로 바라보는 원로들에게 그 뒤를 이을 다음 세대인 우리가 평생교육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까? 평생교육의 과정에 대한 체계성, 객관성, 보편성 그리고 예측성이라는 과학적 속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원로들이 우려하는 문제점들도 그들이 경험한 사회적 속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우리의 평생교육 문제점은 화려하게 빨리 포장 되어진 선물일 수도 있다. 실제로 다양한 매스컴의 효과로 유명해진 사업들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에서는 열매 없는 쭉정이처럼 내실 없는 사업들도 존재한다. 그래서 내실 있는 평생교육의 실체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리라 본다.
Q. 정지웅 선생님께서는 현재 문해교육협회장을 맡고 계시는데, 처음 문해교육을 접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정지웅: 문해교육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많아요. 제가 눈이 나빠 글을 잘 못 보잖아요. 그래서 제가 글 모르는 사람들의 심정을 잘 아는 거예요. 제가 글 모르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돕고 싶었어요. 비문해자 할머니들이 쓴 글을 볼 때는 가슴이 정말 찡한 게 많아요. 그 대표적인 예로 손주가 책을 들고 ‘할머니~’하고 부르면서 달려오면 숨고 싶었다고 해요. 옛날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잘할 수 있는데 손주가 책을 들고 오니깐 글씨 못 읽는 게 탄로날까봐, 창피해서 숨었다고 해요. 손주가 책을 들고 올 때 제일 무섭다고 하는 거, 그런 걸 생각할 때 지금 평생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그 분들이 그것을 벗어나서 글을 쓰고 하는 것을 보면 참 잘되고 있다고 보는거죠. 정지웅: 문해교육협회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1990년 세계문해의 해(International Literacy Year)였어요. 황종건 선생님이 제안으로 사회교육협회 안에 문해교육분과를 만들었죠. 이후, 문해교육분과를 하나의 협회로 하자 해서 1989년에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 때 황종건 선생님이 회장이셨고 제가 부회장이 되어 시작하게 되었죠. 그 당시 농촌에서 많은 활동을 할 때였어요. 한 농촌에 가면 15세 이상의 농촌여성 반 이상이 비문해자예요. 근데 우리 한국의 비문해자 통계는 4~5%예요. 어떻게 조사가 이루어졌냐면 ‘학교 다녔습니까?’라고 질문하면 ‘다녔어요!’하면 더 이상 묻지 않고, ‘안 다녔어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에 한해 ‘한글 알아요?’라고 두 번째 질문을 했던 거죠. 그 때 모른다고 하는 사람의 수를 조사한 것이 그 시절 통계조사 결과였습니다. 솔직히 한글 모르시는 분들이 자기 자식, 사위, 며느리에게 창피해서 속이기도 하고, 글 모른다고 고백한 사람들은 없었을 거예요. 현재 협회를 맡게 된 배경도 초창기에 부회장 했던 경험으로 여러 사람의 추천을 받아 현재 한문협(한국문해교육협회) 회장을 하고 있습니다. Q. 그 당시 문해교육협회에서는 문해교육의 통계조사와 관련해서 조사 방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정지웅: 그래서 그때 1988년도에 유네스코와 협력해서 세종문화회관에서 문해교육과 관련해서 큰 세미나를 했어요. 그 때 도시 근로여성들을 대상으로 문봉남교수, 이지혜교수, 황종건선생님과 함께 연구를 했는데 비문해자가 30%~40%나 된다고 했었고, 저는 농촌의 비문해자가 50% 정도 된다고 발표를 했어요. 그 때의 심정은 양심선언 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곳에 있던 기자가 그 내용을 기사로 쓰려고 했다가 제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지자: 그래서 결국은 4~5%로 발표한 거죠. 정지웅: 정부에서 1990년대까지만 해도 비문해자에 대한 10원 한 푼 안 썼어요. 그 당시에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도 비문해자가 20%, 근데 우리는 4%예요. 그리고 매년 줄여야 하잖아요. 그래서 2000년에 2.7% 까지 갔었어요. 이런 모순이 있었어요. 그때 우리가 양심선언으로 발표한 비문해자 15% 라는 수치가 너무 높다는 이유로 기사로 보도도 못 했어요. 사실은 그 때 이미 30~40%가 넘었을 수치인데 말이지. 지금 더군다나 문해의 개념이 의무교육 수준까지 가야하잖아요. 의무교육 수준까지 가려면 중학교 3학년까지 가야하는데 지금 중학교 3학년까지 해도, 그 수준이 되려면 15세 이상으로 볼 때 40%가 넘습니다. 근데 그거를 인정하는 사람은 지금도 없어요.
Q. 문해교육과 관련해서 앞으로의 바램이 있으시다면? 정지웅: 모든 비문해자의 처우에 관한 문제죠. 모든 비문해자들을 위해 의무교육 차원에서 무상교육을 시켰으면 하는 바램이죠.
김지자: 비문해자들을 개인적인 수준에서부터 가정 그리고 사회로 넓혀 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개발하고 개인과 사회와의 조화를 이루어 나아갈 수 있도록 많은 관련 부처의 관심과 애정을 주셨으면 해요. Q. 현장에 있는 평생교육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 정지웅: Passion(열정)이요. 지금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던 평생교육 실천가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으로 평생학습사회를 만들어 나가길 바래봅니다. 김지자: 나는 평생교육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교육자이고, 학습자라고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부모들에게 당부하고 싶어요. 너무 자녀들을 잘 가르치려하지 말라는 거예요. 아이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해요. 부모의 변화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죠. 부모의 정서에 따라 아이들은 변한답니다. Q.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해교육이란 개인적인 흥미에서 시작한 경우보다 환경적 압박에 의해 자신의 존재성이 위협받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 시작은 배움을 통해 ‘갇힌 삶’에서 ‘열린 삶’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한다. 그리고 비문해자 자신 스스로를 성찰 할 수 있는 비판적 관점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껏 내가 본 비문해자가 ‘문해됨’의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들이다. 본 인터뷰를 통해 비문해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문해교육의 정착을 위해 헌신했던 많은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게 된다.특히, 많은 학자들의 노력도 있겠지만, 비문해자의 현실을 알리고, 원로가 된 지금도 한국문해교육협회라는 현장에서 문해교육 보급을 위해 애쓰는 열정적인 정지웅선생과 김지자선생의 모습에 많은 배움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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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이나 인터뷰를 할 때는 취재의 대상이 한 분야에 대해 오랫동안 종사하였거나, 업적을 이룬 사람들, 또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취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취재 시 질문 할 내용들은 사전 학습을 통해 정리를 한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오늘 주인공들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170여편에 달하는 컬럼, 저서, 논문, 강연 등과 같이 참고할 만한 자료가 많아 인터뷰 준비가 비교적 수월했다. 이들은 인구문제와 커뮤니케이션, 지역사회개발, 농촌교육, 평생교육학 등의 분야에서 저명한 인물이다. 금주 타임즈에서는 평생교육의 원로학자인 정지웅(77), 김지자(76)부부를 만났다.
▲ 정지웅(좌), 김지자(우) 부부
Q. 요즘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신가요?
정지웅: 저는 현재 사단법인 한국문해교육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김지자선생은 협회에서 국제이사직을 맡고 있고, 기독교에서 올해 3월 2일에 정식으로 운영하는 쉐마초등학교 교장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쉐마교육이라는 것을 쉽게 말하자면, 인성교육이라고 할 수 있죠.
김지자: 어떤 종교적인 개념을 떠나서 평생교육 관점에서 도움이 된다면, 한 번쯤은 다뤄도 될 만한 주제라 생각됩니다. 쉐마교육(Shema Education)은 성경의 신명기 6:4~9을 기초로 해서 교육을 하는 방법을 말해요. 그 뜻은 히브리어로 ‘hear, listen’ 즉, 들으라는 의미인데,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일상생활에서 어머니로부터 계속적인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죠. 말씀교육, 가족과 연계된 교육, 생활교육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현재의 인성교육과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도 가정교육이 무척 중요한 것처럼 평생교육의 가장 기본이라고 한다면, 가정교육 안에서 실시되어야 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이 교육을 통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정지웅(서울대학교 명예교수)과 김지자(서울교육대학교 명예교수) 부부는 사회교육학자이며, 평생교육 1세대이다. 사회교육의 이론을 확립했던 그들은 최근, 평생교육의 가장 기본으로 가정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평생교육의 차원에서 볼 때, 일반적으로 계획적이며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학교교육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의 형성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가정교육에 대한 중요성은 쇠퇴 되어지고 있다. 평생교육이 행하여지는 생활현실에서 인간으로서의 자기형성과 삶의 의미의 발견은 일차적으로 가정교육 안에서 기본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지닌다.
Q. ‘평생교육’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정지웅: 평생교육(Lifelong Education)이라는 용어 이전에 사회교육(social Education)이라고 불리었죠. 사회교육이란 간단히 말하면 학교교육의 혜택을 덜 받은 청소년과 성인대상의 의도적, 조직적으로 실시하는 비정규의 학습지도 활동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제가 나이가 들고 보니, 평생교육이란,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이 이야기 하는 장면, 그 자체를 평생교육이라 생각해요. 그 이야기 속에는 ‘배움’이 존재해요. 그 속에는 예절이 있고, 인성이 있고, 성품이 있고, 서로 공존하면서 배움을 이룬다는 것이죠. 가정에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한다는 것, 조부모와 손자들이 함께 한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이 가정교육 안에서 ‘효(孝)’를 실천하는 평생교육이죠.
김지자: ‘평생교육’이라고 할 때는 교육하면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평생교육이라는 것을 어떻게 하면 잘할까라는 것은 우리가 좀 더 생각해봐야할 것 같아요. 그런데 결국 평생교육을 잘하려면 결국 ‘평생학습이야, 어떻게 잘 배울까’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해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어려서부터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 보면 우리는 평생교육을 누군가에게 ‘배웠다’라기 보다는 우리는 평생학습을 ‘해왔다’라는 겁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님이 별 말씀 안하시더라도 ‘내가 한 행동이 올바른 행동이구나.’라는 것을 스스로 터득한다는 것이죠.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면서 그렇게 나이가 먹어가면서 배우는 거죠. Lifelong Learning이지! 삶 자체가 배움인데 그 배움을 좀 더 어떻게 할까라고 하는 것을 학문적으로도 하고 체계적으로 해나가는 것을 평생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배움을 계속해서 꾸준히 하는게 중요하죠.
Q. 선생님께서는 계속적인 배움을 강조하시는데, 두 분만의 특별한 공부 방법이 있으신가요?
정지웅: 공부 할 땐 특히 김지자선생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죠. 우리는 아침마다 영어신문을 보거든요. 같이 읽으면서 서로 의미도 찾고, 토론도 하고, 공부하는 거예요. 오늘 아침에도 ‘fare’라는 단어를 두고 한참을 논쟁을 했지요. 그런 게 다 공부의 습관이 된 거죠. 저는 눈이 안 좋아서 돋보기로 글을 봐요. 책을 보려면 20배 확대해서 보는 기계가 있어요. 근데 돋보기는 창피해서 남 앞에서 안 쓰고, 혼자 있을 때만 휴대용 돋보기를 활용해서 봐요. 대신에 모든 내용들을 머리로 정리하고 기억해서 강의나 세미나, 국제 회의 등에서 페이퍼 없이 발표를 하지요. 페이퍼 보고 읽는 사람은 인기가 없어요, 저같이 페이퍼를 하나도 안보고 말하는 사람이 박수를 더 많이 받고, 강의자로서 손색이 없거든요. 그래서 전 제 직업을 잘 타고난 것 같아요. 그리고 답답할 때는 김지자선생의 도움을 받아요. 김지자선생이 제 부족한 점을 잘 알고 잘 챙겨줘요.
▲ 아침마다 신문을 읽는 정지웅, 김지자 부부
김지자 : 대체적으로 공부를 하는데 영어로 많이 하게 돼요! 나는 매일 영자신문을 읽고 거기서 나오는 새로운 단어가 있으면 그 주제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눠요. 같은 내용은 반복하고, 새로운 내용은 서로 익히면서 계속적인 학습을 하는 거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성교육, 가정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눕니다. 결국은 ‘인재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문제거든요. 요즘 사람들은 학원이나 학교에만 의존하는데, 그것을 가정 안에서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함께한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부모와 아이가 서로 ‘토론’을 통해서 아이들의 창의력을 높이고, 가정에서는 부모에 대한 공경심이 커진다는 것에서 의미 있다고 볼 수 있죠.
필리핀 유학파인 부부의 아침은 영어 신문 읽기와 토론으로 시작된다. 결혼한지 50년이 된 이들 부부에게는 몸에 베인 습관이다.
배움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르나, 정지웅선생은 약시로 인해 약해진 시력이 학습에 방해요인이 된다. 부부란 서로가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어려운 일일수록 위로와 용기로 이끌어 주는 반려자이다. 그런 그에게 김지자선생은 그의 따뜻한 손이 되어 주고, 삶의 무게를 서로 나누어 지고 걷는 안내자이며, 목마른 학문적 갈증을 배움으로 나누는 단비와 같은 존재이다. 그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늘 함께 동행한다. 평생교육 현장의 실천가들이라면, 그들의 아름다운 동행을 한번쯤은 목격 했을 것이다.
Q. 평생교육 1세대인 선생님들께서 평생교육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하셨고, 그 시기에 예측하셨던 평생교육의 방향이 지금 현 시대에 잘 반영되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지자: 저는 평생교육1세대라고해서 평생교육이라는 말을 바로 도입한 것은 아니예요. 그 이전에 사회교육이라고 불렀죠. 그 사회교육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이전에는 학교교육, 그 이전에는 가정교육이라고 봐요. 가정에서만 하던 것을 학교의 중요성이 부각 되면서 학교교육 중심이 되었고, 학교 교육에서 끝날 줄 알았던 교육이 사회에 나가보니, ‘배워야 할 게 더 많다’라는 것을 느끼고, 사회교육이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저는 대학교 다닐 때 논문도 사회교육과 관련된 내용으로 썼어요. 근데 사회교육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매스미디어(mass media)와 관련 되어져서 그 용어조차 평생교육이라는 말로 바뀌었고, 그 의미는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연계성이 있는 것으로 봤죠. 즉, 가정-학교-사회를 lifelong이라는 개념으로 평생을 배워야 한다는 거죠.
▲ 1981년도에 열린 한국사회교육 심포지움
정지웅: 시대가 변하고, 사회교육법이 평생교육법으로 바뀌고, 상당히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봐요. 그래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사회단체나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학교교육의 기회를 놓쳤던 사람들도 이제 배울 수 있다는 점은 이것은 굉장한 일이라고 봐요. 이러한 변화는 문해교육을 보면 더 절실히 느낄 수 있어요.
정지웅: 저는 사범대학에 있었지만 1학년 때부터 ‘농촌사회연구회’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었어요. 내가 피난살이 시절 농촌이 못사는 모습을 보고 ‘이 농촌을 어떻게 살려야할 것인가’라는 것을 생각했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교육이었습니다. 교육이야말로, 우리 한국의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농촌의 전반적인 어려운 상황을 볼 때, 학교교육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사회교육이라는 용어를 써서 60년대에 석사 논문을 썼죠. 그 당시만 해도 사회교육이 아니면 안 되겠다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처럼 평생교육시대가 되고, 이렇게 확대가 될 줄은 사실 몰랐습니다. 그 시절에는 사회교육, 평생교육 해야 된다는 방향만 굉장히 강조하고 있었죠. 그런데 지금 와서 너무 커져서 어떻게 보면 세계적으로 시범국으로 너무 빨리 된 건 아닌가라는 염려도 됩니다. 우리나라는 뭐든지 너무 빨리되거든요.
Q. 지금의 평생교육 문제점은 없을까요?
정지웅: 문제점이라기 보다는 우려 되는 점이 있죠. 너무 빨리 평생학습 사회를 만들었다는 거죠. 우리나라는 무엇이든 빨리 해냅니다. 그게 부작용이 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70년대에 우리 부부가 가족계획에 종사했었어요. 지금 저출산의 문제가 어쩜 우리의 책임인 것 같아요. 그 시절 우리나라가 많은 인구수로 고민하고 있었을 때였죠. 그런데 그것을 가장 빠른 시일 내에 그 문제를 해결 한 거죠. 그래서 세계적인 시범국이 되어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 인구감소 해결방안을 배우러 오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보세요. 지금은 역효과로 저출산 세계 1위 아닙니까? 지식기반사회에 인재가 자원이 되는 이 시대의 역행을 보는 단적인 면이라 할 수 있죠.
김지자: 거기에서 저는 요즘 세대에게 매스컴이 사람들에게 많은 긍정적인 힘을 미치기도 하지만, 매스컴의 문제점도 심각하다고 봐요. 우리 한국에 평생교육에 큰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매스컴과 특히 IT에요. 아이들 IT로 하는 것들을 통제 할 수 없어요. 게임도 그렇고 텔레비전도 그렇고, 제가 제일 신경 쓰이는 부분이죠. 특히, 뉴스 보세요. 대중들은 점점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니면 관심도 없어요. 최근 뉴스의 예를 보면, 목사가 애를 죽였다는 것도 몇 백만분의 한 사례겠지만,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 세상이 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거죠. 이러한 악영향, 역기능이 우리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효율적이고, 점진적인 감성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겁니다. 실제로 평생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어떤 지자체의 네이밍만 좋은 사업들만 운운해 가며, 성공여부를 말하는데 그게 매스컴의 효과라는 거죠. 실제로 현장에 나가보면, 허울만 있을 뿐, 실제로 활용되지 않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 1986년도에 열린 제 1회 한국사회교육협회 세미나에 참석하신 분들의 사진(앞줄 맨 왼쪽이 정지웅선생님)
Q. 향후 평생교육에 대한 전망이나 바램은 없으신가요?
정지웅: 그래서 인성 교육이 무척 중요하다는 겁니다. 김지자선생이 교장으로 갈 쉐마학교는 사실 규모가 크지 않아요. 9명의 학생들이 전교생이지만, 그 부모들이 함께 모였을 땐, 그 규모가 커진다는 거죠. 기독교적으로 유대인들의 교육을 강조하는 것에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종교적인 것을 떠나 유대인들은 나라가 없이도 2000년 동안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 것은 교육의 힘이거든요. 그 시대에 무슨 교육이 있었겠어요.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전부잖아요. 그런 모습을 통해 부모교육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엉망이에요. 부모가 자식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폐륜도 많잖아요. 이런 비윤리적인 타락의 문제도 결국 평생교육에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인성교육도 나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원로들은 가정교육, 인성교육에 가치를 두고 있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학문분야의 정통성보다는 사회적 필요성에 보다 큰 가치를 두고 있는 듯하다. 특히, 실천학문 분야의 평생교육은 지금도 계속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시점에서 평생교육 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필요성을 느낀다. 평생교육을 학문적으로 바라보는 원로들에게 그 뒤를 이을 다음 세대인 우리가 평생교육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까? 평생교육의 과정에 대한 체계성, 객관성, 보편성 그리고 예측성이라는 과학적 속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원로들이 우려하는 문제점들도 그들이 경험한 사회적 속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우리의 평생교육 문제점은 화려하게 빨리 포장 되어진 선물일 수도 있다. 실제로 다양한 매스컴의 효과로 유명해진 사업들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에서는 열매 없는 쭉정이처럼 내실 없는 사업들도 존재한다. 그래서 내실 있는 평생교육의 실체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리라 본다.
Q. 정지웅 선생님께서는 현재 문해교육협회장을 맡고 계시는데, 처음 문해교육을 접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정지웅: 문해교육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많아요. 제가 눈이 나빠 글을 잘 못 보잖아요. 그래서 제가 글 모르는 사람들의 심정을 잘 아는 거예요. 제가 글 모르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돕고 싶었어요. 비문해자 할머니들이 쓴 글을 볼 때는 가슴이 정말 찡한 게 많아요. 그 대표적인 예로 손주가 책을 들고 ‘할머니~’하고 부르면서 달려오면 숨고 싶었다고 해요. 옛날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잘할 수 있는데 손주가 책을 들고 오니깐 글씨 못 읽는 게 탄로날까봐, 창피해서 숨었다고 해요. 손주가 책을 들고 올 때 제일 무섭다고 하는 거, 그런 걸 생각할 때 지금 평생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그 분들이 그것을 벗어나서 글을 쓰고 하는 것을 보면 참 잘되고 있다고 보는거죠.
정지웅: 문해교육협회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1990년 세계문해의 해(International Literacy Year)였어요. 황종건 선생님이 제안으로 사회교육협회 안에 문해교육분과를 만들었죠. 이후, 문해교육분과를 하나의 협회로 하자 해서 1989년에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 때 황종건 선생님이 회장이셨고 제가 부회장이 되어 시작하게 되었죠. 그 당시 농촌에서 많은 활동을 할 때였어요. 한 농촌에 가면 15세 이상의 농촌여성 반 이상이 비문해자예요. 근데 우리 한국의 비문해자 통계는 4~5%예요. 어떻게 조사가 이루어졌냐면 ‘학교 다녔습니까?’라고 질문하면 ‘다녔어요!’하면 더 이상 묻지 않고, ‘안 다녔어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에 한해 ‘한글 알아요?’라고 두 번째 질문을 했던 거죠. 그 때 모른다고 하는 사람의 수를 조사한 것이 그 시절 통계조사 결과였습니다. 솔직히 한글 모르시는 분들이 자기 자식, 사위, 며느리에게 창피해서 속이기도 하고, 글 모른다고 고백한 사람들은 없었을 거예요. 현재 협회를 맡게 된 배경도 초창기에 부회장 했던 경험으로 여러 사람의 추천을 받아 현재 한문협(한국문해교육협회) 회장을 하고 있습니다.
Q. 그 당시 문해교육협회에서는 문해교육의 통계조사와 관련해서 조사 방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정지웅: 그래서 그때 1988년도에 유네스코와 협력해서 세종문화회관에서 문해교육과 관련해서 큰 세미나를 했어요. 그 때 도시 근로여성들을 대상으로 문봉남교수, 이지혜교수, 황종건선생님과 함께 연구를 했는데 비문해자가 30%~40%나 된다고 했었고, 저는 농촌의 비문해자가 50% 정도 된다고 발표를 했어요. 그 때의 심정은 양심선언 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곳에 있던 기자가 그 내용을 기사로 쓰려고 했다가 제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지자: 그래서 결국은 4~5%로 발표한 거죠.
정지웅: 정부에서 1990년대까지만 해도 비문해자에 대한 10원 한 푼 안 썼어요. 그 당시에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도 비문해자가 20%, 근데 우리는 4%예요. 그리고 매년 줄여야 하잖아요. 그래서 2000년에 2.7% 까지 갔었어요. 이런 모순이 있었어요. 그때 우리가 양심선언으로 발표한 비문해자 15% 라는 수치가 너무 높다는 이유로 기사로 보도도 못 했어요. 사실은 그 때 이미 30~40%가 넘었을 수치인데 말이지. 지금 더군다나 문해의 개념이 의무교육 수준까지 가야하잖아요. 의무교육 수준까지 가려면 중학교 3학년까지 가야하는데 지금 중학교 3학년까지 해도, 그 수준이 되려면 15세 이상으로 볼 때 40%가 넘습니다. 근데 그거를 인정하는 사람은 지금도 없어요.
Q. 문해교육과 관련해서 앞으로의 바램이 있으시다면?
정지웅: 모든 비문해자의 처우에 관한 문제죠. 모든 비문해자들을 위해 의무교육 차원에서 무상교육을 시켰으면 하는 바램이죠.
김지자: 비문해자들을 개인적인 수준에서부터 가정 그리고 사회로 넓혀 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개발하고 개인과 사회와의 조화를 이루어 나아갈 수 있도록 많은 관련 부처의 관심과 애정을 주셨으면 해요.
Q. 현장에 있는 평생교육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
정지웅: Passion(열정)이요. 지금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던 평생교육 실천가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으로 평생학습사회를 만들어 나가길 바래봅니다.
김지자: 나는 평생교육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교육자이고, 학습자라고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부모들에게 당부하고 싶어요. 너무 자녀들을 잘 가르치려하지 말라는 거예요. 아이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해요. 부모의 변화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죠. 부모의 정서에 따라 아이들은 변한답니다.
Q.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해교육이란 개인적인 흥미에서 시작한 경우보다 환경적 압박에 의해 자신의 존재성이 위협받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 시작은 배움을 통해 ‘갇힌 삶’에서 ‘열린 삶’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한다. 그리고 비문해자 자신 스스로를 성찰 할 수 있는 비판적 관점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껏 내가 본 비문해자가 ‘문해됨’의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들이다. 본 인터뷰를 통해 비문해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문해교육의 정착을 위해 헌신했던 많은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게 된다.특히, 많은 학자들의 노력도 있겠지만, 비문해자의 현실을 알리고, 원로가 된 지금도 한국문해교육협회라는 현장에서 문해교육 보급을 위해 애쓰는 열정적인 정지웅선생과 김지자선생의 모습에 많은 배움을 얻게 된다.